제주 오조리, ‘자연의 신장(腎臟)’을 지킨 탄소중립 실천 사례

고운실 한국보건안전평가인증원장
고운실 한국보건안전평가인증원장

드라마의 힘은 대단하다. 한번 방영되었던 장소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치르는 것 같다. 제주도에서 해가 가장 일찍 돋는 성산읍 오조리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공항 가는 길’과 ‘웰컴투 삼달리’ 촬영 장소였던 이곳은 용천수가 마을 곳곳에서 솟아나고, 넓은 내수면과 일출봉 앞의 야트막한 오름인 식산봉이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물이 빠진 내수면에는 바지락, 고둥, 게 등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서식한다. 화산 분출물과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색 쪽빛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퇴적 지형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한쪽 끝은 육지에 붙어 있는 해안지형이 발달해 담수와 해수가 섞이는 양식장과 갯벌 등으로 연안 습지가 넓게 분포해 지질학적 명소를 연결하는 지질 트레일 코스이기도 하다. 모래사장 또한 물새들로 장관을 이루고, 썰물 때는 조개잡이를 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제주 올레 1~2코스로 지정된 이후로도 크게 붐비지 않던 마을이지만, 드라마 방영 이후로는 주말마다 자동차 소리로 마을의 좁은 도로가 시끄러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이렇듯 어린 시절을 보낸 오조리 습지는 친구들과 학교를 오가며 놀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여서 그 당시 꼬맹이들에게는 마치 환경 슈퍼마켓이며 백화점 1층의 즐비한 맛집 같았다. 지금은 황사비로 상상도 못하지만 여름의 비 오는 날이면 옷을 입은 채로 비 맞으며 놀던 추억의 장소다. 실컷 놀고 난 후 배가 고프면, 젖은 옷 속에 모래 사장의 조개와 고동을 작은 손으로 헤집어 파넣고 집에 오곤 했다.

그러면 비 때문에 목욕을 시켜주니 입술은 새파랗게 질리고, 얼굴은 멀쑥하니 예쁘니까, 비 맞은 자식보다 젖어버린 책이 마르지 않을까봐 잔소리 하면서도 어머니는 솥뚜껑 위에 책을 말려 주곤 했다. 그리고는 텃밭에서 여름부추 한웅큼 뜯어다 빗소리와 함께 장단을 맞추던 부침개 지글거리는 소리가 정겨웠다. 자식의 배고픔을 달래주며 어린 미각을 살려주던 그 어머니는, 오조리의 빛이 눈이 부신 듯 새벽녘 살포시 눈을 감아 안 계시니, 하늘 한번 보고 그리움 한 웅큼 참아내니 견뎌지기도 하는 지금이다.

그런 추억이 있는 그 갯벌에 저어새, 황새, 매를 비롯해 일 년 내내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철새들이 노는 갯벌 연안습지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다. 그나마 환경 문제에 마을 주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연안 습지 앞에 다리(한도교)가 건설되면서 해수 흐름을 통제하는 갑문 설치로 해수 흐름이 막히자, 생태계가 변하기 시작하면서다. 조개가 많이 잡히던 연안의 생태환경이 서서히 파괴돼 조개 생산량이 줄고 악취가 나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지역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내수면 수질 관리를 위해 갑문 개방을 요구했고, 설치 후 20년이 지난 후에야 개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인간의 편익과 경제 발전만을 위해 달려온 인류에게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도교 갑문 문제 이후에도 오조리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아 왔다. 무분별한 연안 매립이 지속되면서 얼마 전에는 장맛비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습지가 훼손되면서 자연재해를 조절하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습지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며,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조절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또 갯벌은 해양으로 유입되는 물질을 정화하는 ‘자연의 신장(腎臟)’역할을 하므로, 그 보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습지, 갯벌 보호와 관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런 가운데 오조리 해녀들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연안습지 보호 구역에서 수중 정화 활동을 한다고 한다.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건강한 생태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며, 이는 고향의 습지 보전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 것 같다. 내 고향 오조리는 마을 주민들이 연안 습지의 중요성을 자발적으로 인식하고, 그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전하기 위해 습지 보호 지역 지정을 정부에 오랫동안 요구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21일에 제주도 최초로 연안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이며, 그 노력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관광지로 유명해진 지역들은 개발에만 급급하지만, 오조리는 자신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도 있는 람사르 습지 보전 지역 지정을 위해 노력했다. 고향 주민들 덕분에 연안 습지를 잘 보존하여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마을 이름처럼, 어릴 때 알람을 하지 않아도 우리집 종이창문 틈새로 들어오던 밝게 빛나던 그 햇살처럼 빛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행정구역상 오조리가 있는 성산포 지역은 제주 제2공항 건설 문제로 찬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개발론자들의 입김이 센 지역이다. 그와 달리 오조리는 생태 자원을 활용해 더 빛나는 마을이 되어 가고 있어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한국은 습지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람사르 협약’ 당사국이다. 람사르 협약의 정식 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오조리가 갯벌 습지보호 지역을 잘 보전해 세계인의 생태계 보물섬이 될 수 있다면, 오조가 아닌 10조 이상의 환경 자산을 후대에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오조리 주민들의 연안습지 보호를 위한 선택은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을 위한 솔로몬의 지혜와 같다. 

하지만, ‘개발은 악이고 자연은 선'이라는 생각은 종종 종교적인 시각이나 민주주의라는 이유로 강조되곤 한다. 개발과 환경이 상생하려면 단순히 양측의 가치와 신념의 차이를 넘어서 국익과 과학의 관점에서 만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유능하고 세련된 국민은 두뇌로 말하고 인상쓰는 근육의 힘으로 나서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감정적인 다수의 흥분이 아닌 이성적인 다수의 의사결정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고향 마을 주민들의 노력은 매우 가치가 있다. 그들은 감정적 반응이 아닌, 과학적 근거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바탕으로 연안습지를 보호하려는 접근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상생을 위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ESG는 기업이 단순히 이익 추구를 넘어서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그리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경영철학을 의미한다. 이제는 마을 사업도 이러한 철학을 받아들여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즉 ESG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