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연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장
고기연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장

즐겨 읽는 책 ‘흔들리는 나를 위한 1일 1철학’에는 용두사미(龍頭蛇尾)를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좋지 않다”로 풀이하고 있다. 출처는 중국 고전인 주자어류(朱子語類)다. 주자어류는 주자학을 집대성시킨 남송시대 유교 철학자인 주희(朱熹)의 어록을 담은 책이다. 용두사미는 중국 송나라의 고승 진존자가 이야기한 것에서 유래한다.

우연히 만난 승려가 부처님 말씀에 대해 몹시 아는 체하며 큰소리친다. 이를 듣다가 진존자는 그의 법력이 보잘것 없음을 간파한다. “그대는 단지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가 아닐까 의심스럽소”라고 진존자가 말한다. 그러자 보잘것 없는 승려는 입을 다물고는 뱀이 꼬리 감추듯 슬그머니 가버렸다고 한다. 허장성세는 진실 앞에서는 오래 가지도 못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일들을 마치지 못한 것이 적지 않다. 오래 전 근무한 국제기구에서 중국인 동료와 3년을 같이 근무하면서 중국말을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나중에 중국에 여행갈 때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한어수평고시(汉语水平考试), HSK의 기초수준인 3급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하지 못했다. 아직도 중국어의 성조 사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필자는 산림청 근무를 한 지 30년이 되어간다. 국토의 2/3나 되는 산림을 산림 르네상스 시대 ‘보물산’으로 만드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자 한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원주에서 산림헬기 관리업무를 하고 있어 그것은 아직도 꿈에 머물고 있다. 개인적으로 용두사미를 벗어나도록 고민하고 노력할 시간이다.

사회적으로 주요 정책들이 용두사미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 요즘 필자의 머리에 맴도는 사회적 이슈는 출산율 문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3월 1분기 인구동향’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0.76명이라고 한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인 15세에서 49세까지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숫자이다. 인종, 계급, 성별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 캘리포니아대 월리엄스 교수가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쥐어짜는 장면이 언론에 회자되었다.

한국의 출산율은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압도적’ 꼴찌다. 우리 다음으로 출산율이 낮은 이탈리아가 2020년 기준 1.24명, OECD 평균이 1.59명이니 한국이 눈에 띄게 낮은 것은 분명하다. 출산율은 2015년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정작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용두사미로 흐르는 관련 정책들이다.

과거 정부 출범 시마다 저출산 관련 정책을 의욕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당초 계획을 달성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출산율 통계를 보더라도 성과는 미흡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언론 기사에 따르면 2006년부터 15년간 38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였다고 한다. 지난 정부에서도 초창기 강한 정책 의지를 보였다. 2017년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 고령화 위원회 위원장을 맡기까지 했다. 또 보건복지부 산하에 위원회를 운영할 사무처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비전 제시도 있었다. 양육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서 출산율 저하에 대응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관련 지표를 보면 삶의 질은 개선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국민들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표가 부동산 가격이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어야 청년이나 직장인들의 삶도 안정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올해 서울아파트의 매매 중위가격은 10년 전보다 2배 올랐다. 수도권 집중화, SNS 사용증가 등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과 결합해 결혼과 가족에 대한 기존의 태도들이 약화되고 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출산율은 계속 저하되고 있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용두사미 경향이 빈번하다. 조선세종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처음에는 준행(遵行)하는 것 같으나, 곧 다시 해이해져서 끝을 잘 마치는 것이 드물다”고 하였다. 용두사미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필자는 3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 비전과 목표가 당초 거창하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능력은 안 되는데 말이 앞서서 머리와 몸이 고생하는 격이다. 용은 현실에 없고 상상 속에서 그려낸 존재다. 없는 용보다 있는 뱀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일 때도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꿈을 꾸고, 당초 계획을 중간에서 수정하는 유연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계획을 이행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용과 같은 거대한 계획을 세울 정도의 용기는 정작 이를 실제 이행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정조 임금도 “우리나라 사람은 토론에 강한데, 본론에는 약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출산율 문제는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요인이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충분한 효과를 지속해서 낼 수 있는 실행 대책을 챙길 수 있는 전략적 지혜를 정책 담당자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기존 목표설정과 이행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회 일원으로서 소속된 시스템 내에서 자기 기여를 해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한편, 현재 우리의 정책은 케인즈 경제철학의 영향으로 수요 창출과 성장지향 위주이다. 연간 성장률 1%대가 현실화되는 지금 단계에선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할 시기이다. 공급 방식을 혁신하고, 시장지향 민간 주도 방식으로 하도록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책상에 앉아서 이론과 산술적 계산으로 정책 현실을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수십 년간 성과 내지 못한 현재의 저출산 대책도 해현경장(解弦更張)식 검토가 필요하다.

용두사미 화두를 앞세우고 자신과 사회를 바라본다. 근거 없는 희망 품기와 책임지지 않는 용두사미식 정책은 문제해결을 늦출 뿐이다. 되레 당면하는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반복된 정책 실패는 “해도 안 된다”는 상실감과 패배 의식을 불러온다. 정작 필요한 도전 의식과 해결 의지를 약화시킬까 우려된다. 송나라의 고승 잔존자는 허세에 대해 ‘용두사미’라 정색하며 길거리 승려를 호통쳐 쫓아냈다. 나약해지는 자신과 과이불개(過而不改)하는 사회를 추스려 진실의 잣대로 쇄신했으면 한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